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ㅇ씨는 올해 초에 주한미군을 상대로 하는 분양 전문 사무실에서 사장으로 있는 ㅁ씨를 만나 애인 사이가 됐다. 8월까지 두 사람은 그럭저럭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8월쯤에 이르러 ㅁ씨와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ㅁ씨는 유부녀 신분이긴 했지만 ㅇ씨는 각별한 마음으로 대해오던 터라 이 돌발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아 몇 번 그녀가 일하는 사무실에 찾아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실연당한 남자가 그렇듯이 다소 흥분을 했을 수도 있겠으나 사무실 체재 시간은 길게 잡아야 채 10분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10월 초순 ㅇ씨는 한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ㅇ씨는 이때의 통화 내용을 녹음해 두었다가 나중에 녹취사무소에 의뢰해 녹취록을 남겼다.

남자: (매우 흥분한 상태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함, 계속 그러함) 너 어디야? 니 회사로 지금 갈게, 너, 거기 있어.
ㅇ씨: 아저씨가 누구냐고요?
남자: 그러니까 이 XX야, 묻지 말고 이… 너, 임마, 그러니까…너, 왜 임마, 사람 괴롭히는 거야?
ㅇ씨: 괴롭히는 게 아니고, 지금 경우가 그렇잖아요, 아저씨.
남자: 뭐가 경우야? 이런… 야 임마!, 너, 지금… 도대체 너, 지금 뭣 하는 거야?
ㅇ씨: 아저씨가 누군지 정확하게 밝히고 그렇게 했으면 (‥)

이 ‘남자’는 추잡스런 욕설과 협박하는 어조로 통화를 이어갔다.

남자: 너는 XX야! 너는 XX야, 야비하게 안 굴었냐? 이 XXX야! (…) 야! 이런 X할 놈아, 야, XXX야, 너, 그러니까 나오라고, XX야

이쯤 되면 ㅇ씨가 유부녀와 관계를 맺었다는 데 대한 윤리적 평가와는 별개로 충분히 고소를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남자는 2분 28초 동안 진행된 통화에서 내내 이런 ‘야비한’ 공세를 취했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 않았다. 처음에 ㅇ씨는 이 남자가 ㅎ씨의 바깥양반인 줄 알았다. 그러나 통화를 하면서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일까?

그날 이 남자는 ㅎ씨와 함께 ㅇ씨의 직장으로 찾아왔다. ㅇ씨는 이날 두 남녀가 들어오는 차량과 이 남자가 차에서 내려 서성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그리고 이 증거 자료들이 첨부된 고소장을 작성해서 10월 말 피고소인의 주소지가 있는 관할 경찰서로 가서 고소장을 접수하려고 했으나 담당 형사들은 반말 투로 ‘관할이 아니다’며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았다.

이 즈음 돌발적인 실연을 당한데다 이 정체불명의 남자의 협박이 겹쳐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ㅇ씨는 정신과에서 ‘중등도의 우울성 에피소드’와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향후 3개월 이상의 정신과적 면담 및 약물치료가 필요함’이라는 의견에 따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자 5차에 이르는 민원 접수를 하며 상급기관과 국가권익위원회에 경찰의 부당행위를 알리는 한편, 국무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까지 진정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ㅇ씨는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은 관할 경찰서의 ㄷ형사과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왜 여기저기 다니냐’는 취지의 항의성 전화를 받았다.

국가권익위 조사관과 동석한 자리에서 ㄷ형사과장은 항의성 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다가 ㅇ씨가 녹음한 핸드폰 수신통화 녹취를 조사관 앞에서 들려주자 마지못해 인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ㅇ씨는 이후 고소장을 협박 사건이 발생한 지역의 경기도 광주경찰서에 접수하자 발빠르게 수사에 들어가 경찰들은 얼마 안 돼 그 문제의 ‘남자’를 특정하게 됐다. 12월 중순경 광주경찰서에서 두 남자의 대질이 이뤄졌다. 이때 이 남자는 자신의 직업이 목사이며 신도인 ㅁ씨를 돕고자 한 것이며 욕설과 위협을 가한 적은 없다고 말했으나 사실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록’을 제시하자 지금까지 유지해온 거짓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 남자가 목사라는 사실도 심히 의심스럽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세상에 어느 목사가 자신의 신도를 돕는 데 욕설과 협박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동원한단 말인가? ㅁ씨도 그렇다. 이 남자를 남편이라고 하는 등 제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되는 대로 말을 꾸며도 좋은가? 이런 거짓말 하나가 전체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나쁜 평판을 가져다주는지 알고나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참과 거짓이 난맥상으로 얽혀 있어 들여다보면 볼수록 골치가 아파오는 세상이다. ㅇ씨의 증거 확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형사과장의 거짓말과 협박 용의자의 거짓말은 사실로 통해 협박 피해자만 상처 입은 바보처럼 남아 지금도 약물 치료를 받고 있을지도 모를 뻔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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