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에서 해피 투게더

우리의 청춘을 지배한 사람 장국영지금 중국인 사이에 부는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80년대 말에서 90년대를 지나며 홍콩 스타 붐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 원인은 <영웅본색>에서 찾을 수 있고 그 중심에는 주윤발, 유덕화, 알란 탐 그리고 장국영이 있었다.<장국영 천상에서 해피투게더>는 장국영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들을 골라 분석하고 또 이를 통해 그의 숨겨진 부분까지 추론해 보려 한다. 크게 여섯파트로 나누어진다. <영웅본색>으로 시작된 한국에서의 장국영 붐, 대중 영화를 통해 들여다본 가장 대중적 모습의 장국영, 왕가위의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가장 장국영다운 모습, <패왕별희>등 첸 카이거의 작품 속에 드러난 예술인 장국영, 영화 속 음악을 들려주는 장국영, 그리고 마지막 영화 <이도공간>과 그의 마지막 모습. 또 장국영이 죽은 직후 홍콩으로 날아가 그의 마지막 흔적들을 쫓고, 영결식에서 그를 떠나 보냈다.다양한 영화 평론가, 기자들이 영화 속의 그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므로 각각의 다른 그를 만나 볼 수 있다.모든 것을 가진 남자?, 아무 것도 없는 남자!잘생긴 외모, 인기, 돈, 홍콩 부촌의 아름다운 집, 배우로서의 명성,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명성까지. 언뜻 그는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인생은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고독과 외로움으로 둘러싼 삶일 뿐이었다.대지주였던 할아버지, 헐리우드 스타들의 양복을 만들던 재단사 아버지. 그는 명성 있는 가족사를 지니고 있지만, 오히려 이것조차 어린 장국영에게는 외로운만 부추길 뿐이었다. 그후 가수, 배우로서의 성공도 이런 장국영의 공허를 달래줄 순 없었다. 게다가 홍콩은 기울어져 갔고 그는 늙어갔다. 여러 영화를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는 결국 홍콩의 쇠락을 지켜보며 절망을 안고 호텔 24층에서 몸을 날렸다.홍콩은 1973년 이소룡이 사망한 후 30년만에 또 하나의 큰 별을 잃었다. 장국영은 그가 치열하게 살아냈던 세상에 6천7백만 달러의 자산, 60여 편의 영화와 50여장의 앨범, 그리고 오래도록 희미해지지 않을 강렬한 추억을 남겼다.
저작권자 © 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