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에서 발생한 ‘묻지 마 살인’이 여성 살해로 밝혀진 가운데 여성 혐오 범죄가 다시 뜨거운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30대 남성이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안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을 두고 ‘정신질환 범죄다’, ‘여성혐오 범죄다’로 나눠지면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거리로 번지는 게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보단 자칫 남성과 여성의 갈등으로 번질지 우려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근본은 살해자가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서 그랬다”고 밝힌 것에 찾아봐야 한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보단 심각한 정신분열을 앓는 단순살인”으로 선을 그었지만 여성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미 강남역 부근 주변은 시민들의 추모 행렬, 촛불집회로 이어지고 있으며, 현장에 붙은 쪽지에는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여성들의 공포감이 자리 잡고 있다.

추모 열기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여성들이 체감하는 두려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온 여성들이 이번 사건에 분노한 이유에 대해 정확이 짚어봐야 한다.

내 딸, 내 부인, 내 어머니가 어딘가에서 ‘묻지 마 살인’으로 죽어간다면 누구라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잠재된 여성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 대한 비하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정신분열로 인한 살인으로 치부하기엔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표창원 의원은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로 단정 짓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관계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계획적 범행인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또 “이 같은 행위는 비뚤어진 남성중심주의 하위문화가 존재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여성 관련 범죄는 해마다 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95년 강력 범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이 비율은 1995년 72.5%에서 2014년 87.2%로 증가하고 있고, 공중화장실에서 일어난 범죄 가운데 성 범죄 비중은 201년 23.3%에서 2014년 46.5%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눈에 잘 띄지 않은 화장실 같은 범죄 사각지대에서 여성이 피해자가 될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이에 대한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과 건축법에 따르면 일반 상가 화장실은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 대상이 아니기에 남녀 분리를 강제할 수 없었지만 23일 행정자치부가 법 사각지대에 있는 민간 건물 화장실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는 점은 늦었지만 환영할 한 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20일 이 사건과 관련, “국민의당은 안전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당의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 사회적 위기를 해소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고 밝힌 바 있다.

남성주의 문화 탈피와 여성이 안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해야 하는 논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여성들이 지속적인 차별 대상인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라 볼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여성들의 분노에 대해 사회 각계는 충분한 논의와 더불어 혐오 범죄에 대한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을 서둘러 마련한 것도 중요하지만 졸속 땜질 처방의 비판을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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