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버린 윤석열? 전두환 발언 뒤늦게 사과
尹 “전두환 발언, 비유 부적절했단 지적 수용”…‘사과’ 없단 지적 나오니 “송구”
[시사신문 / 김민규 기자] 국민의힘에서 그간 호남 민심을 얻고자 공을 들여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당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갑작스러운 전두환 호평 발언 때문에 유탄을 맞게 생기면서 사과가 필요하다고 압박했지만 요지부동이던 윤 전 총장은 발언 취지를 왜곡했다고 항변한 끝에 21일에야 뒤늦게 유감을 표명했다.
◆ ‘전두환 발언’ 파문에도 윤석열, 사과 없이 도리어 공세만
윤 전 총장은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갑 국민의힘 당협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려이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분들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주장했었다가 여당은 물론 소속정당 내부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받자 20일 대구시당에선 “호남인들을 화나게 하려고 한 얘기가 아니다. 위임 정치를 하는 게 국민을 편안히 모시는 방법이란 차원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광주에 가서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엔 “하허”라고 웃을 뿐 사과 여부에 대한 즉답은 피한 바 있다.
또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서도 “저는 12·12 모의재판에서 판사 역할 하면서 당시 신군부 실세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사람이고 저의 역사의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며 “제가 하고자 했던 말은 대통령이 되면 각 분야 전문가 등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해서 제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을 뿐 사과 입장은 내놓지 않았는데, 급기야 그에게 힘을 실어줬던 진중권 전 교수까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발언 자체도 문제지만 사과를 거부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고집인지, 보수층에 호소하려는 전략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발언의 후과는 다른 실언과 차원이 다르다.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뿐 아니라 홍준표 의원에 힘을 싣고 있는 이언주 전 의원 역시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실언 자체보다 더 큰 문제도 윤 후보는 실언하거나 잘못을 하고도 절대 사과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도리어 비난하며 호통치고 왜 자기 말을 곡해하냐고 화를 낸다”며 “윤 후보의 이번 발언은 자신의 지지율 뿐 아니라 국민의힘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이 되고 있다. 지금은 80년대 권위주의 시대가 아닌데 문제는 그가 이런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전 총장은 여전히 사과와는 거리를 둔 채 20일 대구MBC에서 열린 대선토론회에서도 경쟁주자인 홍 의원을 향해 “지난 대선에 나와선 박정희, 전두환을 계승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화살을 돌리는 모습만 보였는데, 격앙된 홍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또 나름 음해하고 있다”고 반발한 데 이어 21일에도 “윤 후보의 전두환 정권 옹호 발언은 위험한 역사 인식이다. 히틀러 시대 독일도 대단한 경제발전이 있었던 때인데 그러면 윤 후보는 히틀러 시대도 찬양하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 尹 호남 지지율 하락 가시화, 놀란 당 대표까지 연일 ‘쓴 소리’
하지만 윤 전 총장의 이 같은 태도는 이미 호남 민심을 격분케 만들고 있는데,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기관이 지난 18~20일 전국 유권자 1003명에게 실시한 10월 3주차 전국지표조사(95%신뢰수준±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국민의힘 후부로 홍 의원이 나올 경우 광주·전라 지역 대선 지지율은 2주 전보다 2%P 하락한 14%에 그친 반면 윤 전 총장은 같은 기간 동안 동 지역 지지율은 급락해 한 자리수대인 9%로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이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라고 가정했을 경우 34%를 기록하며 이재명 민주당 후보(35%)와 박빙의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와 호남 표심이 전체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은 것으로 비쳐지지만 한편으로는 당초 자신의 지지율이 높지 않은 민주당 강세지역인 호남을 아예 버리고 자신의 지지기반인 국민의힘 지지층, 더 나아가 영남 표심만 결집시켜보겠다는 정치적 계산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다만 윤 전 총장의 ‘전두환 발언’ 때문에 호남 민심이 돌아설까 부담을 안게 된 당 지도부에선 당내 대선 경선만 의식한 듯 비쳐지는 윤 전 총장을 향해 연일 사과할 것을 주문했는데,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일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빠르게 논란을 정리하려면 본인의 정확한 입장 표명, 특히 상처 받은 분들에 대한 사과 표명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과에 인색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촉구한 데 이어 같은 날 국회에서도 “사과를 좀 주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더 일이 발전해나가지 않도록 조속히 조치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대표는 윤 전 총장 발언으로 인한 역풍을 막고자 당초 일정에 없던 전남 여수시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참배까지 추가하며 21일 호남으로 내려가 “당 대표실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만 없다. (윤 전 총장이) 어떤 의미로 발언했는지 설명했지만 동의하기 어렵고 그 인식에 반대한다”고 강조했으며 김기현 원내대표까지 같은 날 윤 전 총장을 겨냥 “정치인은 발언에 있어서 본인 내심의 의도보다는 국민들이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를 헤아려 신중히 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한 목소리로 압박에 나섰다.
특히 이 대표는 여순사건 위령탑 참배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윤 후보의 생각은 당의 생각과 분명히 대치됐고 이 건으로 인해 호남 지역민들이 국민의힘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을까 걱정스러우며 지난 노력이 오히려 상처로 다가올까 우려스럽다. (윤 전 총장도) 스스로 경쟁력과 기대치를 약화시킨 행위”라며 “호남민들에게 죄송하다. 다시는 기대치를 열화시키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정정할 수 있도록 당 대표로서 공개적으로 권고하겠다”고 호남 유권자들을 향해 사과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 반박하던 윤석열 결국 “유감”…‘사과’ 없단 지적 이어지자 “송구하다”
이처럼 곳곳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캠프 내에서도 광주로 가서 사과할 것을 건의하는 목소리까지 나오자 윤 전 총장도 21일 당사에서 “설명과 비유가 부적절했다는 많은 분들의 지적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유감을 표한다. 앞으로도 낮은 자세로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국민들의 여망인 정권교체를 이루도록 하겠다”고 유감을 표명했는데, 다만 ‘유감을 표명했는데 사과 혹은 사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유감의 표현이다”라고만 선을 그어 유감 표명마저도 여론의 압력에 마지못해 내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당장 홍 의원은 같은 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차피 사과할 일을 가지고 깨끗하게 사과하면 될 일 가지고 무책임한 유감표명으로 얼버무리는 행태가 한두번인가. 우기고 버티는 게 윤 검사의 기개냐”라며 “(국민의힘은) 김종인 위원장이 무릎을 꿇고 이 대표가 취임 첫날 광주를 방문했으며 5·18 유공자는 괴물집단이라고 발언한 의원을 당에서 제명처리하기 위해 노력한 바 있다.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겠나. 제가 당 대표였다면 제명감”이라고 윤 전 총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결국 윤 전 총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독재자의 통치행위를 거론한 것은 옳지 못했고 ‘발언의 진의가 왜곡되었다’며 책임을 돌린 것 역시 현명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무한책임의 자리란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정치인의 말과 행동의 무게를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로 삼겠다”며 “원칙을 갖고 권력에 맞설 땐 고집이 미덕일 수 있으나 국민에 맞서는 고집은 잘못이다. 전두환 정권에 고통을 당하신 분들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하는 글을 올리며 한층 자세를 낮췄다.
다만 이틀 넘게 맹타당한 끝에 나온 늑장 사과인 만큼 과연 호남 민심에 얼마나 와 닿을지는 미지수인데, 이 지사와의 경선 갈등으로 그나마 민주당에서 이탈 조짐을 보였던 이낙연 전 대표 지지층 일부조차 윤 전 총장의 이번 ‘전두환 발언’ 여파로 국민의힘으로부터 돌아설 가능성만 높아지게 돼 결과적으로 당심만 의식하다 본선 확장성을 잃어버리게 만든 자충수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