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한방에, 반쪽을 찾기 위해 … '여기를 택했다'

컴퓨터의 '받은 편지함'을 열었다. 현란한 문구로 도배된 수십 통의 스팸 메일이 생쥐가 멀쩡한 치즈를 갉아먹은 것처럼 편지함의 용량을 차지한다. 오른손에 포위(?)된 마우스는 스팸메일을 청소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메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TLCparty(대표 엄광섭)였다. 초기화면에는 'USA 유학생 선후배들의 모임에서 비롯돼 멤버쉽 클럽을 설립,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한 우수한 재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내최고 수준의 멤버쉽 파티클럽'라고 파티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에 부합하듯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은 물론 외국의 유명 대학을 졸업한 인물들로 가득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한 공간에 소수의 엘리트 계층만이 누리는 파티 문화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지난 16일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100회 특집 파티에 참가했다. 오후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진행된 파티는 800여명의 다양한 계층의 남녀들이 참여, 색다른 하룻밤을 즐겼다. 어깨의 반을 과감하게 드러낸 몇몇 여성들, 등이 훤히 파이고 가슴의 골이 보일 듯 말듯한 원피스를 입은 30대 초반의 여성, 하얀 망사 스타킹의 검은 원피스, 꽃무늬 원피스, 카우보이 복장을 차려입은 여성 등등 연예인의 패션을 방불케 했다. 대체적으로 남성들은 양복 차림이 주를 이뤘는데, 반팔 차림의 평상복이나 해변가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은 파티장 분위기와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재즈강사, 영어전문기자, 건축디자이너, 이벤트회사MC, 기획연출가, 변호사, 골프선수, 연극인, 클럽DJ 등등 다양한 계층의 20∼30대 남녀들이 와인잔을 들고 오가며 마음에 드는 상대 이성과 인사를 나눈다. 매주 주말마다 파티가 진행되는 데, 우연의 일치인지 만나본 사람들의 대다수는 처음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이날은 2만5천원의 저렴한 비용만 지불하면 누구나 참석 가능했다.아직 짙은 어둠이 깔리지 않은 시각인지 넓은 홀을 가득 메우기에는 사람들의 수가 부족해 보였다. 이끌어주는 MC가 없다보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은 서로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물론 여러 번 참가해 보거나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이들은 능수능란하게 입담을 자랑했다. 와인을 먹으며 만남이 지속되는 가운데, 스피커에서는 회원들의 장기자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쑥스러움 탓인지, 아님 눈치 살피기 작전인지 장기자랑에 참가하겠다고 접수한 회원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용기있는 5∼6명이 무대 근처로 모이자 순식간에 4∼5배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전직 아나운서 이수정씨가 사회를 맡아 흥을 돋웠다. 6∼8명이 5∼6조로 나눠 패션쇼를 선보이며 대부분 춤을 선보였다. 막가춤을 비롯해 섹시댄스, 커플만의 라틴댄스 등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웃음을 선사해줬다. 50여만원 상당의 호텔 숙박권이 1등에게 부상으로 주어졌다. 20∼30여명이 참가한 장기자랑에서 1등을 거머쥔 사람은 무대 위에 누워 섹시 댄스를 선보인 '부모님께 티켓을 드리려고 참가했다'고 말한 20대 여성이었다. 오후 11시경부터 시작된 댄스 파티는 삽시간에 춤추는 남녀들로 뒤섞이며 나이트클럽을 방불케했다. "좋은 만남 갖기 위해 찾았어요"재즈강사 이수경(여, 가명)씨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매일 집에만 있어요. 그런데 엄마의 성화도 있었고, 좋은 만남을 갖고 싶어 처음으로 오게 되었어요. 아직까지는 분위기 좋은데요"라며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복학, 졸업하기 전에 취업이 된 이명수(가명)씨는 "아직까지 한국은 '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왕 왔으면 내빼지 말고 나와서 즐겨야 하는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도 있드라구요. 웨이터만 없는 외국의 나이트클럽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튼 좋은 경험이긴 했어요"라고 말했다. 골프선수 김종혁(남, 가명)씨는 "나이트클럽 가는 비용보다 저렴하고 다양한 사람도 만날 수있어 친구들과 오긴 왔는데, 실망스럽네요. 프로그램을 이끌어주는 MC도 없고, 주최측에서 좀더 신경을 써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번 ㅅ호텔에서 열렸던 행사는 오늘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람들은 많은 반면 공간이 비좁아 남녀가부딪히는 경우가 많았죠. 이러다보니 자연스레 스킨쉽이 생기고..."라면서 실망하기도 했다.구체적으로 직업을 밝히기 꺼려한 한 직장 남성은 "광고 메일로 처음 접했고, 친구 녀석이 유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오게 됐어요. 여자들을 포함해 20∼30명 정도 오는데 우리끼리 즐기다 가는 경우가 많아요. 행사 끝나면 다른 곳으로 2차를 가죠. 입소문이 더 중요한 건데, 이렇게 프로그램이 미비해서야 친구들한테 오라고 하겠어요?"면서 소감을 밝혔다. 자연스레 기자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데이트 한번 하자'며 말을 건네는 40대 중년 남성은 "아무런 생각없이 긴장을 풀 수 있는 파티여서 좋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뤄지고, 공개된 장소에서 여러 계층의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다"며 말했다. 이날 사회를 본 이수정씨는 "TLCparty 대표와의 친분이 있어 몇 번 MC를 봤어요. 수십만원의 회원 가입비를 지불하는 결혼업체 등 상업적인 업체들이 많은 반면 TLCparty는 저렴한 비용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남녀의 만남이 이뤄진다"고 파티의 장점을 밝혔다.나의 반쪽을 이곳에서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들은 여러 형태의 연결고리를 통해 백년가약을 맺는다. 학교를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직장인의 경우엔 이성과의 만남이 쉽지 않아 동호회, 결혼업체 등에 문을 두드린다. TLCparty와 같은 사교클럽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결혼에 골인한 커플은 없다고 하지만, 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외로운 하이에나처럼 먹잇감을 찾으러 어슬렁거리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날씬하고 예쁘게 생긴 여성들에게 접근해 명함을 내밀며 다음을 기약하는 남성이 있다. 또한 친구가 중매쟁이로 나서 커플로 만들려고 애쓴다거나 마음에 맞는 남녀들이 핸드폰으로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또한번의 만남을 기약하는 등 인연을 만드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좋은 만남을 갖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파티에 대한 호기심 등 이런저런 이유로 참가했지만, 이들이 갖는 공통점은 분명 있다.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체험을 만끽한다는 것, 그리고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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