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생물들의 생존에 영향 미쳐 생존 불가능

'산이 아프다. 산이 울고 있다'천성산 산자락이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당장 눈앞의 편리함만을 쫓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정부는 경부고속철도를 착공하기 위해 금정산과 천성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려 하고 있다. 이외의 국책사업인 새만금간척사업, 경인운하건설, 북한산관통도로가 지역민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으며,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데 말이다. "지렁이가 살 수 없는 땅에서는 우리도 살 수 없습니다"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환경문제의 현안으로 '금정산·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다른 현안들과 마찬가지로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내원사 지율 스님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천성산의 외침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직접 나침반을 들고 천성산을 수백번 오르내리며 탐사를 했으며, 지형도도 손수 만드는 등 애정을 쏟아부었다. 국토순례, 범시민대회, 삼보일배,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거리 미사와 음악회, 토론회, 자전거 투어, 일인 시위, 38일간의 단식 농성 등을 통해 지난 3월 공사 중단과 재검토 협의를 위한 위원회 구성이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다. 천성산 습지는 국내 최대 고원 늪지로 환경부 지정 진퍼리새, 끈끈이주걱, 땅귀개, 이삭귀개, 잠자리 난초, 미꾸리낚시 등 식물 군락지에 695종의 희귀 토종식물과 38종의 습지 곤충이 서식하는 국내 최대의 생태계 보고다. 또 천연기념물인 참매, 황조롱이, 수리부엉이와 소쩍`새, 길이가 2㎝가량인 꼬마잠자리, 왕은점 표범나비 등 희귀 동물과 곤충 수십종이 살고 있다. 지율 스님은 "고속철도 문제를 사시화해서 문제 제기를 하기 전에 천성산에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전 구간을 나침반을 두고 여러 번 많이 걸었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늪을 지나고 계곡과 벼랑을 오르내리면서 개인적으로 말없는 산이 저한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했고, 또 그 생각들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면서 "사실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구간 반경 700m에는 파충류들이 겨울잠을 잘 수 없어 사라져 가고 있으며 지렁이 또한 없어진다고 합니다. 개구리나 뱀이 살 수 없고, 지렁이가 살 수 없는 땅에서는 우리도 살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생명에 대한 작은 약속을 지켜나가고 싶다"지율 스님은 "공사가 이뤄지는 곳곳이 활성단층대 지역으로 안전 검증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고, 주변 지하수 유출이 매우 높은 곳이다. 그리고 산하동 계곡, 성불암 계곡, 법수 계곡, 주남 계곡, 내원사 계곡 등 6개 계곡이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물줄기가 끊어지게 된다"며 "한국은 산이 국토의 70%를 차지할 만큼 그 역할은 중요하다. 사람들이 대개 산과 물은 별개라고 생각들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산을 계속해 깎아내린다면 물의 공급도 순조롭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UN에서 지정한 물부족 국가인데, 있는 산마저 없애버리려 한다면 나중에 자급해서 물을 사용할 수 있는가 말이다"고 경고했다.그리고 "항공방제로 인해 숲의 나비나 벌, 잠자리 등이 사라지고 있다. 이들이 사라지면 꽃가루를 공급해 줄 수 없어 꽃이나 나무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20년 전에는 늑대, 여우가 살았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자식을 어미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생명에 대한 작은 약속을 지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운동 초기에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사회단체들이 모여들더니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나홀로 투쟁'이 되버렸다. 38일간의 단식 농성을 마치고 쉬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정부와 부산의 시민단체가 뒤로 결탁한 채 협의회를 구성했다. 나중에 수차례 공문을 보내며 항의를 해 보았으나, 대표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협의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천성산 탐사 조사도 협의회 소속 교수들은 5차례 비행기를 타고 부산을 오갈 뿐, 천성산에는 단 한차례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제까지 정부와 1대 1로 공문을 주고 받았는데..."면서 긴 한숨을 내뱉었다. 또한 "4억4천만원의 용역을 따낸 대형지질공학회 회장은 나를 찾아오더니 대뜸 "안전하게 뚫어드리겠다"고 첫마디를 내뱉었다. "얼릉 나가세요"라고 내쫓으며 이후 차량을 막는 등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설계 도면도 완성되지 않은 채 공사는 중단되고 말았고, 자료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율스님은 "이 땅은 영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성산과 금강산인데 이 땅을 죽음의 땅으로 해서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또한 생명의 땅을 죽음의 땅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경제적인 논리나 개발논리가 선행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생태계 파괴 뿐만 아니라 산 자체의 붕괴 우려" 경산대 풍수지리학과 성동환 교수는 "천성산은 양산시와 양산 웅산읍에 삶터를 마련해 주는 산줄이다. 수많은 수려한 계곡들이 산줄기마다 펼쳐지고, 22곳의 고산습지가 능선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고산 습지는 우리 나라에서 매우 희귀한 지형으로 특수한 환경에 적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생태계이다. 이 늪 생태계 바로 밑으로 고속철도의 터널을 강행하게 보면 늪 생태계의 파괴 뿐만이 아니라 산 자체의 붕괴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다"고 경고했다.또한 "경부고속철도가 자연생태계보전지구인 무체치늪을 비롯해 대성큰늪, 밀밭늪 등 아래에 터널을 뚫고 지나가게 되면, 늪의 지하수에 의한 지하수에 의한 지하공동현상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어 붕괴의 우려가 있으며 늪의 물이 터널이나 터널 바깥으로 스며나가 늪의 물을 말려버릴 수 있다"며 "터널 공사와 고속 주행으로 나타나는 지속적인 충격, 고전압 등에 의한 전자파는 희귀생물들의 생존에 영향을 미쳐 생존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함세영 부산대 지질학과 교수는 "금정산과 백양산을 보면 70여 군데의 스프링(어떤 구조대를 따라서 암석의 틈을 따라서 나오는 물)이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용천수는 양산단층이라든지 동래단층의 지배를 받는 소규모 전리대를 따라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터널 굴착이 된다면 용천수도 영향을 받고 거기에 수량의 감소 내지는 고갈, 또는 수질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그냥 이대로,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두는 것이 최선입니다!"김봉옥 전국자연보호 양산시지부장은 '천성산환경보존 운동'에 참여하게된 계기에 대해 "천성산은 늪지대를 비롯해 희귀한 동·식물이 많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다.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천성산처럼 고찰과 명산이 어우러진 곳이 한국에는 거의 없다. 특히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6km에 이르는 계곡은 동양 제일의 풍경이라 자부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며 "그런데 이렇게 좋은 명산 한가운데에 '고속철도'를 명분으로 터널을 뚫으면 자연이 죽게 된다. 더욱이 내원사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할 소중한 사찰이다. 어느 무엇보다 자연보호를 소중한 대의로 삼고 살아온 우리에게 천성산 문제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고 말했다.김봉옥 지부장은 "정부는 현재 천성산 고속철도 통과 계획을 보류시켰다. 그 대안으로 양산시내 한복판에 고속철도를 관통시키겠다는 복안을 내놓고 있다"며 "천성산이 훼손의 위기에 놓였을 때는 아무 말 없던 시민들이, 자신의 터전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맹렬하게 반대한다. 천성산은 양산시의 소중한 자산이 아니던가? 결국 장기적으로 보아서는 양산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를 이용, 결국 원래 계획대로 천성산에 터널을 뚫는 '음모'가 현실화될까봐 무척 우려된다"고 정부의 시책을 비판했다. 또한 "자연의 상태 그대로 놔두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서울-부산 간 경부선 철도나 고속철도나, 차이는 15분 정도 밖에 나지 않는다. 고작 15분 먼저 가자고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자연유산을 파괴시킬 참인가? 우리는 너무나 성급하고 경솔하게 살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답답한 현실을 전국적인 이슈로 확산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우리도 자비를 들여 어렵게 활동하는 상황인지라 답답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손으로부터 자연을 빌려왔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정철현 전국자연보호 김해시지부장은 "금정산·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운동 초기에는 환경운동연합 등의 환경 관련 단체들이 활발히 참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며 "현재는 지율스님을 중심으로 내원사만의 '나홀로 투쟁'의 양상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래서 전국자연보호중앙회가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정철현 지부장은 "내원사가 비구승들이 수도하는 곳이다 보니 '여성차별'적인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부산시나 고속철도관리공단측이 밀어부치는 감도 있고... 하지만 이대로 가면 결국 전국의 불자(佛子)들이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후손에게 빌려온 천성산이라는 귀중한 자연을 어떻게 엉망진창으로 망쳐놓을 수 있겠는가? 당위성도 적은데다 일본의 신칸센을 지나치게 의식한 게 틀림없는 고속철도가, 한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을 천성산을 짓밟는 걸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자연보호'를 최우선으로 하여 고속철도 구간은 재조정되어야 한다"면서 "전국자연보호중앙회에서는 8월중으로 천성산 문제의 심각성과 절박함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등반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 행사는 단순히 산을 오르는데 머무르지 않고, 천성산에 분포된 자연 생태계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소 체험하는데 주안점을 두게될 것이다"고 말했다. 해병대 전우회 양산시 연합회 김홍선 조직본부장은 "국립공원이 취사 금지가 법적으로 규정되면서 경찰이나 지역 주민들이 천성산을 홍보, 관리했다. 그런데 효율적인 관리가 되지 않으니까 양산시에서 3년전 의뢰가 들어왔다. 그때부터 천성산을 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또한 "우리가 처음 왔을 때는 천성산이 쓰레기 더미로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지금은 오후 6시면 등산객을 철저히 차단, 자연을 보존하고 있어 지역 주민으로부터 호응과 칭찬을 받는다"며 "환경보호활동, 인명구조, 교통통제 등 3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김 본부장은 "향락철이면 울산,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피서를 하러 온다. 주말에는 평균 2∼3여만명이 찾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며 "천성산은 보기 드물게 천연적으로 늪지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한번 훼손된 자연은 좀처럼 복원하기 어렵다. 경부 고속철도를 건설할 필요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했으면 한다. 후손으로부터의 원망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고속철도를 완공한다 해도 지역 발전에 그다지 영향을 그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건설 반대를 표명했다.공동취재 장혜원 기자, 오공훈 기자 ogh@sisafocus.co.kr사진 임한희 기자.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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