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검토하겠다’ 뒤로는 ‘계속된 연행’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부터 주말까지 7일간의 여름 휴가를 보내는 동안, 한총련 수배자와 가족들은 '한총련 합법화·수배해제'를 요구하는 촉구대회를 가졌다. 연세대 교정을 찾은 지난 21일 교내 곳곳에는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해제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즐비했다. 더구나 교문 앞에 '노상노숙 감옥농성'을 알리는 네 개의 감옥이 자리하고 있어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짖꿎은 장마비, 뜨겁게 내려쬐는 땡볕에도 불구하고 50여일의 단식농성에 이어 15일째 '노상노숙 감옥농성'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유의 몸을오후 2시 학생회관 3층 푸른샘에서는 11기 한총련 대의원과 전국에서 생업을 뒤로 한 채 상경한 정치수배자 80여명의 가족 등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정재욱 11기 한총련 의장(연세대 총학생회장)은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해제를 약속받고 몇달이 지났습니다. 줄곧 약속을 받아왔고, 기다려 왔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주춤하기도 했고, 다시 한번 싸워야겠다고 의지를 다지기도 합니다. 지금 합법화와 수배해제의 마지막 기로에 서 있습니다"며 "지지자와 성원자에서 주체로 나서신 한총련 수배자 부모님께 송구스럽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민중의 지지와 참여로 새로운 학생운동을 만들겠습니다. 박수받는 11기 한총련으로 거듭나겠습니다"고 전했다. 한총련은 노무현 참여정부 출범 이후 상당한 변화를 기대했지만, 계속되는 약속 번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정치수배해제 사무실 개소 이후 5개월간 24명의 한총련 수배자들이 연행돼 수배자와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참담할 뿐이다. 유영업 한총련 정치수배해제 모임 대표(수배 7년, 5기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는 "정부는 누차 '한총련 합법화와 정치수배 해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해왔지만, 검토하겠다는 말뿐이었고, 뒤로는 수배자를 연행하고 있다"며 눈물을 적셨다. 또한 "차라리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수석·강금실 장관이 한총련 문제에 대한 해결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애가 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이 저희에겐 '단비'였는데 이후 6개월간 정부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강조했다. 수배 3년차인 9기 한총련 이산라 대의원의 어머니 김낙희씨는 "자식들의 문제는 너무나 절박하다. 수배해제를 기대해왔는데 너무나 실망스럽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찾은 8. 15를 맞아 애국하는 한총련 학생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현실을 바꾸자"라며 정부가 자식들에게 자유를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강위원 '한총련 합법적활동 보장을 위한 범사회인대책위원회' 집행국장은 지난 4월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만났을 때 이들이 수배해제와 한총련 합법화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며 "(정부는) 7월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6월에 공안대책회의를 열어 11기 한총련에 대해 이적단체로 규정하겠다고 공언했다며 "11기 한총련 합법화 없는 수배해제는 무의미하다. 수배해제와 합법화를 동시에 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행사를 마친 수배자와 가족들은 푸른 수의를 입고, 자신의 몸에 포승줄을 묶은 채 과천 정부청사로 향했다. 법무부에 당도하기 앞서 버스 창가에 비추는 건 수십명의 경찰병력이었다.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약식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사이 '한총련 합법화'라고 적힌 대형 플랭카드와 관련해 부모님과 경찰과의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장과 강행순씨(11기 한총련 의장 어머니) 등은 청사 방문객 안내소에서 법무부 민원실 계장을 만나 '강금실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권 회장은 "정치수배 문제를 8월까지 끄는 것은 너무 늦다"라며 7월 안에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가족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이들은 장대비가 퍼붓던 지난 22일 경찰청이 11기 한총련 대의원 44명에 대한 소환장 발부 방침을 세웠다는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경찰청 앞에서 항의시위와 신문고 울리기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23일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은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기소된 97년(5기 한총련) 이후부터 수배를 받아온 162명 가운데 30여명을 대상으로 인권실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한총련 수배자들 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공안당국의 회유, 협박 등에 시달리고 있어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수배자들은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당하고 있는 인권침해 문제 때문에 이중 고통을 겪고 있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찰이 가족들을 통해 수배 학생들의 한총련 탈퇴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친지나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가협이 조사한 사례를 보면, 경찰이 부모님에게 "연행돼 잡혀가면 지하실에서 조사 받는 거 다 알지 않느냐"며 가족들을 협박하거나 "자식을 왜 그렇게 키웠냐?"라는 폭언을 퍼부어 가족들이 심한 맘고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수시로 집이나 직장으로 가족들을 찾아오거나 심지어는 동네 통장에게 '저 집 아들이 가끔씩 집에 오는 지 확인하라'고 해 확인하러 온 통장과 가족들이 크게 싸우는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경찰의 과도한 집 주변 탐문으로 인해 수배사실을 알게된 동네 사람들의 눈총 때문에 가족 전체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수배 5년차 7기 대의원인 한 학생은 "경찰이신 아버지가 나 때문에 관할 경찰서 등지로 불려 다니며 시말서를 쓰신 적이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10기 대의원이었던 한 수배학생도 "경찰이 아버지가 근무하는 회사로 자주 찾아오는 바람에 결국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민가협과 한총련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한총련 이적규정의 부당함을 차치하고라도 수배자들의 인권보호라는 차원에서 수배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이다"며 "정부가 수배학생들과 그 가족의 참혹한 인권상황을 직시하고 조속히 수배해제 조치를 단행할 것이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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