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메라폰으로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영화 ‘트루먼 쇼’가 현실로....현대판 빅 브라더 카메라폰, 전 국민의 파파라치화 불러 이제 더 이상 ‘사생활’이란 단어는 고어(古語)사전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를 ‘한 여자의 일생을 망가뜨린 공범자’로 만들어버린 ‘몰카’. 그 희생자인 0양이나 가수 B양의 섹스몰카가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킨 이른바‘몰카주의보’가 해제되기도 전 더욱 강하고 파괴력이 큰 ‘카메라폰(핸드폰과 카메라가 결합된 형식)주의보’가 내려졌다. 국내에 내장형 카메라폰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은 지난해 4월.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모델명 'SCH-X590' 애니콜 휴대폰이 효시였다. 디지털 4배줌, 카메라 렌즈 180도 회전등의 기능을 갖췄지만 10만 화소에 불과해 화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불과 1년 새 카메라폰 시장은 급속히 팽창하여 시장의 60% 가량을 점유하고있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팬택&큐리텔, KTFT, LG전자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카메라폰 종류만도 20여종에 육박하고 화질 역시 디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동통신 업계에서 추정하는 현재 카메라폰 이용 대수는 250만대 가량.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 3천 2백만 명의 1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현재 신규 판매분의 50% 이상이 카메라폰이기 때문에 연말까지는 7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휴대 전화로 화상 통화를 할 수 있는 비동기식 IMT-2000(W-CDMA) 서비스가 연말 서울 지역에서 우선 실시되면 휴대폰에 카메라를 장착하는 것은 기본이 된다"며 “내년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 휴대폰이 카메라폰으로 대체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출시 초기 10만 화소급이 주류였던 카메라폰의 요즘 주류는 30만 화소급.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에는 100만 화소, 내년이면 200만 화소급 카메라폰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00만 화소 정도만 되면 A4 용지 크기의 사진으로 인화를 해도 선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뿐 아니라 동영상을 녹화할 수 있는 캠코더 기능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미 1~2분 정도의 짧은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제품이 출시됐으며 조만간 오디오가 포함된 20분 이상 분량의 동영상을 연속 촬영할 수 있는 휴대폰도 등장할 전망이다. 연속 촬영, 줌 기능, 밝기 조절, 편집 등 기능도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핸드폰에 부착된 카메라폰은 여관이나 비디오방, 단란주점 등 각종 유흥업소에서 남녀가 섹스를 나누는 모습을 담아 인터넷에 유통시키던 기존의 몰카의 수준에서 벗어나 현재 카메라폰의 악용 사례는 길을 걷는 중이나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 공중화장실 이용시 등 평범한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해 카메라가 인간을 감시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현재 모든 이의 카메라폰의 악용 사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인 허운나 민주당 의원이 카메라폰 규제를 위한 입법안을 추진 중이다. 허 의원은 “매너모드(진동)인 상태에서는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 촬영을 해도 옆에서 전혀 모를 정도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며 “동의를 구하지 않은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인터넷상에서 유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촬영 시 소리가 나게 만들도록 하는 등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연구 중”이라며 “카메라폰을 생산하는 업체에 촬영 시 소리가 나도록 하는 등의 의무화 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부 역시 “카메라폰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곧 내부의 공식적인 검토나 절차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악의적 카메라폰 촬영 확산, 기업과 학교 역시 홍역 치러 혹자는 취미로 친구들과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무슨 상관이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즐기면 된다는 ‘선의 가득한’주장을 펴고 있으나 카메라폰은 몰카 공포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젊은 소비층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디카)와 일견 별 차이는 없어 보이나, 디카와는 비교가 안 되는 휴대의 편리함과 신속성, 얼핏봐서 전화를 하는 지 사진촬영을 하는 지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순간 찍힐지 예상할 수 없다. 더군다나 몰카가 설치되어 있을 거라 예상되는 여관, 비디오방, 공공기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와는 전혀 다르게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 지 전혀 알 수 없어 카메라폰의 위력에 무방비인 셈이다. 최근에는 휴대폰 폴더를 열지 않고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제품까지 등장했다. 전화 통화를 하는 중이라도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화면에 담을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인정받았던 카메라폰. 이제 카메라폰은 개인의 지극히 평범한 사생활까지 침해하고 있다. 카메라폰과 치열한 숨바꼭질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카메라폰 동호회가 다수 결성되어 있다. 자신이 찍은 카메라폰 사진을 공유하는 것이다. 한창 유행했던 ‘스티커 사진’을 연상시키는 자신의 얼굴과 몸짓을 과시하는 듯한 사진이 대다수지만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진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또한 여러 명의 학생들이 집단 학살을 당한 시체처럼 널부러진 모습을 연출하고는 ‘시체놀이’라고 이름짓는가 한편, 당사자의 허락을 받았을 리 없는 민망한 사진들도 많다. 선명한 화질로 인해 누구인지 쉽게 얼굴이 확인 가능해 심각한 사생활의 침해가 우려된다. 또한 성인 전용 사이트나 파일 교환 사이트에는 카메라폰을 이용한 ‘몰래 카메라’ 사진과 동영상들이 쏟아진다. 목욕탕이나 수영장 탈의실, 화장실등이 카메라폰을 이용한 몰카의 집중 공략 대상. 지하철 앞자리에 치마를 입고 앉은 여성의 속옷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가 한편,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모습까지. 지금 카메라폰을 통한 전 국민의 파파라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나 학교 등 공공기관도 카메라폰과의 한 판 전쟁을 치르고 있다. 카메라폰을 통해 사내 기밀 문서가 유출되는 등 피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 올 초 한 자동차연구소의 경우 한 협력업체 직원이 미공개신차 사진을 카메라폰으로 찍어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런 사태가 증가할 것을 예상한 현대ㆍ기아차는 주요 연구시설과 본사 사옥 21층 등 사내 핵심시설을 카메라폰 휴대 금지구역으로 지정했고, 심지어 카메라폰 제조 업체인 삼성전자도 7월 중순부터 반도체와 LCD, 가전 전 사업장에서 임직원과 방문객을 포함한 모든 출입자의 카메라폰 반입을 전면 통제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카메라폰 부작용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학생들이 시험 시간에 답안지를 카메라폰으로 찍어 친구에게 전해주는 커닝 방법이 등장하는가 하면, 수업 시간에 체벌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카메라폰에 담아 인터넷에 올리는 바람에 논란을 빚은 사례도 발생했다. 인권보호냐 기업이익보호냐, 결국은 사용자의 윤리문제로 귀착 가능성 커 이렇듯 카메라폰의 부작용이 날로 심각해지는 현실에서 카메라폰의 제조업체측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물론 가장 먼저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정부다. 정보통신부가 공중 목욕탕 등에 카메라폰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사용을 금지하는 초강경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 미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에서 탈의실이나 수영장 등의 카메라폰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는 점도 정부의 규제 정책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소 읽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처방법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제조업체가 애당초 이런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는 않을 전망. 업계가 발산 장치를 의무화할 경우 원가가 크게 상승하고 디자인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삼성전자, LG전자, 팬택&큐리텔 등 카메라폰 제조업체들이 정부의 카메라폰 사용 규제에 강력 반발한 것이다. 업계는 “카메라폰 규제는 국내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기존 휴대폰에서 일본을 압도했던 우리나라가 카메라를 장착한 카메라폰에서는 광학기술이 앞선 일본에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 따라서 업계는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일본에서는 이미 100만 화소급 제품이 출시되는 등 기술력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제를 하게 되면 중국 등으로의 수출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기업체들은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카메라폰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카메라폰 오·남용 문제는 관련법에 의한 처벌 내지는 관련 장소의 사업주, 행사주체 측에서 사용·반입을 금지하는 등 당사자간의 해결로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산하 휴대폰산업협의회 역시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 관계 부처에 이 같은 규제를 반대하는 입장을 건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키로 했다고 밝혔다. 전자진흥회 관계자는 “세계 어디에도 정부 차원에서 사용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자칫 잘못할 경우 그 동안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침체된 내수경기를 다소나마 떠받쳐오던 휴대폰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카메라폰 규제 논의가 그나마 수출효자상품인 카메라폰 산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빗발치면서 정부도 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촬영할 때 신호음을 내거나 빛을 발산하도록 하는 기술적 장치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고 기존의 사용 규제 방안에서 한 발 물러선 것도 이 때문이다. 산하 기업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정보통신부는 현재 인권보호와 기업이익보호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정보통신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의견을 취합해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라며 “규제에 따라 카메라폰 산업이 위축되는 결과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카메라폰으로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무단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는 선에서 규제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팽배하다. 현행법 상 공공장소에 피사체(인물)의 허락없이 단순한 촬영을 하는 것은 처벌할 수 없다. 다만 사진을 상업적ㆍ악의적으로 이용했을 때와 성적 욕망을 일으키는 신체특정부위를 촬영했을 경우에만 민ㆍ형사상 책임이 따른다.. 카메라폰을 이용한 몰래카메라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용자들 스스로의 의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당연한 지적만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카메라폰 사용자들은 법률적인 부분에 대해 무지한 상태다. 더구나 악의적 카메라폰 사용자들은 ‘찍는 건 자유,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현실이다. 때문에 사용자들의 윤리적 촬영문화 조성만이 앞으로 더욱 기능이 강화될 카메라폰 몰래카메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 이미 카메라폰은 확산되어 있고 이미 판 카메라폰을 회수할 수도 없다. 처음 산업용으로 만들어진 개발된 원자폭탄이 결국 어마어마한 살인무기로 둔갑했듯이, 카메라폰 역시 사용자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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