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실직 이후 생활 위해 카드 이용, 3천여만원 빚더미에 결국 죽음 택해

30대 주부가 자신의 아들,딸과 함께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 주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그 저변에는 '카드빚'이라는 쇠사슬이 주부의 목을 계속 조여나갔고 있었던 것. 불덩이처럼 늘어가는 채무에 지쳐버린 주부는 끝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혼자만의 죽음이 아닌 피붙이인 자식들과 함께 말이다. 총3여천만 빚더미 앉아 전세금 1천7백만원짜리 16평 아파트에 세들어 살던 손씨의 행복이 와르르 무너진 것은 지난 2000년 남편이 실직한 이후. 이때부터 단란했던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남편의 취직 소식은 쉽사리 들려오지 않았고, 결국 손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자식들을 내버려 둔 채 집을 자주 비우기란 쉽지 않았고, 당시 그에게 '카드'는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패막이었다. 그러나 카드의 수는 3장으로 늘어났고, 다가오는 '카드 결제일'은 손씨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카드 돌려막기'를 하며 근근히 생활해 온 손씨는 최근 남편 조모(34)씨와 함께 신용불량자로 등록됐다. 카드빚 2천만원과 은행대출금 1천만원 등 3천여만의 빚을 떠안게 된 손씨에게는 하루가 멀다하고 빚 독촉을 알리는 전화벨이 울려댔다. 괴로움에 몸서리쳤던 손씨는 종종 전화 플러그를 빼놓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라도 고통에 벗어나기 위해.세 자식과 함께 죽음 택해 하지만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도 잠시. 결국 손씨는 두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이승에서의 삶을 놓아버렸다. 지난 17일 오후 4∼5시경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선 손씨는 버스를 타고 가다 인천 부평구 청천동 S아파트에서 내렸다. 오후 6시 10분경 고층으로 올라간 손씨는 계단 창문을 통해 두 딸(3세,7세)을 내던진 뒤 아들(6)을 품에 안고 뛰어내렸다. 손씨와 두 딸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아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으나 2시간여만에 숨지고 말았다. 손씨가 투신 자살한 S아파트는 인천의 고층 아파트로 손씨의 집으로부터는 7㎞ 가량 떨어져 있다.목격자 김모(42·여)씨 등에 따르면, 14층과 15층 사이 계단 창문을 통해 10여초 간격으로 손씨가 딸 2명을 차례로 던진 뒤 마지막으로 아들을 안고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 15층 주민 문모(48)씨는 "비디오를 빌리려 나와보니 심하게 울고 있는 낯선 아이들과 여자 한명이 복도 계단에 있었다"며 "다시 조용해져 승강기를 타고 1층 밖으로 나왔는데 아이들과 아이 엄마가 잇따라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또한 14층에 살고 있는 주민 이모(56)씨는"'엄마, 나 죽기 싫어'라는 여자 어린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계단 쪽에서 몇차례 들렸다"며 "아마 뛰어내리기를 거부하는 딸을 엄마가 강제로 내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숨진 손씨의 뒷주머니에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살기 싫다. 죽고 싶다. 안면도에 묻어달라'는 내용의 유서와 현금 1만5천원, 집 열쇠 등이 발견됐다.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손씨의 남동생(31)은 "매형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지난해 겨울 가출한 이후 누나가 식당일·파출부 등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왔다"며 "평소에도 가족을 만나면 먹고 살기 힘들어 죽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했었다"고 말했다.'내가 자살하면 어떻게 될까'18일 새벽 3시 남편 조씨는 유족진술을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 그는 "일하던 가구공장이 3년 전 부도가 나 실직한 이후에는 일자리 얻기가 어려웠다"며 "수입이 없다보니 생활비 마련을 위해 카드빚을 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를 찾아보기 위해 집을 장기간 비운 적은 있지만 가족과 완전히 연락을 끊고 가출한 것은 아니다"며 "지난 15일에도 집에 들렀다가 대전의 한 공사장에서 일감이 생겨 내려가 있던 차에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며 후회했다. 손씨 이웃들은 "아이들이 아파서 병원을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이웃들에게 1만∼2만원을 빌리기도 했다"며 "아이 엄마도 애들이 셋이나 되다 보니 어디 나가서 일도 못했다"고 말했다. 손씨가 살았던 아파트 경비원 박모(71)씨는 "원래부터 손씨가 말수가 적었지만 며칠 전부터는 시름시름 힘이 없어 보였다"며 "오전에도 경비실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놀아줬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오후 마지막으로 손씨를 만난 중학교 동창생 김모(34.여)씨도 "손씨네 집에 놀러갔었는데 '살기가 힘들다'며 '내가 자살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물어 놀랐다"며 "생활이 많이 어려워 그런 말을 하는 줄 알았지 실제로 자살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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