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사회
"가족들의 억울한 恨 풀어드려야죠"생업 포기한 채 13년간 행불자 위해 발로 뛰어다녀
장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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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3.06.19  11: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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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5.18행방불명가족회(이하 행불회) 김정길 회장이 드디어 일을 냈다. 지난 80년 광주의 비극이 낳은 행불자를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담기로 한 것. 노태우 정권에서 5.18성역화를 이룬 김영삼 정권을 거쳐 지금까지, 그의 발걸음은 한번도 가벼운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광주시청 직원들이 그의 이름만 나오면 너스레를 떨까. 생업도 포기한 채 이 일에만 전념한 지도 벌써 15년. 주변에서 미친 X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도 그가 손을 놓을 수 없는 데는 행불자 가족들의 맺힌 한(恨)이 너무도 컸다. 물론 행불회 회원들을 비롯해 알아주는 이 하나도 없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5.18광주민주화운동에 관여했던 행불자의 명예회복을 비롯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강하게 작용하기도 했다. 횃불시위에 참가한 동생 사라져 김정길 회장도 행불자 가족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80년 2월 DJ(디스크 쟈키)로 취직하기 위해 광주에 내려간 동생 김성기(당시 27세)씨를 잃었다. 동생 김성기씨와 마지막으로 연락된 사람은 가족이 아닌 친구 민병대씨였다. 횃불시위에 참여했다는 친구와의 전화 통화가 가족과의 이별을 고한 셈이다. 부모 몰래 광주로 내려가 망월동 묘지를 살피는 등 동생을 찾기 위한 안간힘은 1년만에 종지부를 끊게 됐다. 아무리 찾아봐도 동생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1988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후 5.18 희생자를 치유한다는 명목하에 정부 차원의 보상법이 생기게 돼 행불자 신청이 가능해졌다. 불운하게도 김성기씨는 김 회장의 친동생이 아니었다. 친형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이 어렵게 되자 부친 김인식씨의 양아들로 입적된 후 고생 끝에 1993년 2차 보상심의 때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받게 됐다. 당시 송언종 시장 "특별법 제정해야"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23일간 광주 5.18로 인해 단식투쟁을 하는 등 성역화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여러 차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설득, 그 결과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5.18사건의 핵심 인물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을 구속, 광주 망월동에 묘지를 세우는 등 보상이 이뤄진다. 하지만 보상법이 한시적이라 보상 혜택을 받은 행불자의 수는 미비했다. 김 회장은 송언종 광주시장을 찾아가 5.18행불자들이 보상도 못받고 고통받고 있다며 호소를 하기도 했으며, 1996년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광주시청 회의실 복도에서 김홍신 의원을 만나 절박하게 하소연한 끝에 질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기존 재판 절차나 심사절차의 다른 특별 절차를 만들어 가지고 별도로 구제하는 특별입법을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이 5·18 행불자를 위해서 해 주신다면 저로서는 그 법에 따라서 이것을 실천할 용의가 있습니다. 현행법의 테두리내에서는 도저히 행정관으로서 방법이 없습니다"라는 송 시장의 답변으로 끝이 나버렸다. 조사 내용 판이해 발벗고 나서 김 회장은 심사위원회에 제출된 서류 내용과 행불자 가족들과의 말이 달라 자체조사를 했다. 그 결과 당시 관련 공무원들의 무성의한 조사, 왜곡, 허위조작 등이 난무해 보상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불자 가족들은 심사위로부터 대거 '기각' 판정을 받았다. 그는 방송국, 신문사 등을 찾아가 이와 같은 상황을 낱낱이 고했고, 당시 언론에서도 관련 공무원의 잘못된 조사로 인해 행불자들이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됐음을 전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청와대, 국회 할 것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김 회장은 "관계 공무원들이 보상금에 눈먼 사람으로 취급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광주로 내려가 시청 관련 공무원들과 구두약속으로 "경찰 입회하에 재조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100회 이상 받아내기도 했던 그지만, 작년 5월 항의를 하다 특수공무방해죄로 구속되는 등 불운을 겪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한 풀어줘야 김 회장은 "가족들이 힘겹게 시위에 참가한 행방불명자를 봤다는 목격자를 찾아냈지만 정부가 조사를 하면서 묵살한 경우가 부지기수다"며 "한번 죽은 것도 억울한데 우린 3번씩이나 죽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 등 관련기관이 조사한 내용조차 성실히 검토하기보다는 강압적인 자세로 조작과 왜곡을 일삼아 왔으며, 또 현지 탐문조사라는 것도 객관성을 결여한 억지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행방불명 가운데는 넝마주이나 구두닦이 출신이 꽤 많다. 우리 사회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분연히 일어선 500-600명에 이르는 이들의 가족들은 보상신청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노무현 정부가 행불자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등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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