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인디 밴드 코코어. 장르의 다양성을 실험하는 고감도 음악 순례를 추구한다

살아남은 자의 여유코코어는 이제 제법 '관록'이 붙은 인디 록 밴드다. 여기서 소개하려는 음반 가 정규 음반으로서는 세 번째니까, 만만치 않은 경력이다. 음반 한 장 간신히 내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는 이 땅의 인디 밴드들이 넘쳐나는 현실을 볼 때, 코코어의 건재는 단순히 '운'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요인이 분명히 있다. 과연 는 코코어의 베테랑적 역량이 가감없이 발휘된, 썩 들을 만한 음반이다. 62분이라는 만만치 않은 시간 동안 로큰롤, 소울, 싸이키델릭, 보사노바, 가스펠, 일렉트로니카, 인도 음악 등 대중음악의 무지개 빛 스펙트럼이 가득 펼쳐진다. 더구나 단순히 장르의 어설픈 진열에 그치는 것도 아니고, 각각의 트랙에 담긴 완성도 또한 출중한 편. '인디 록'이라는 카테고리에 걸맞지 않게 사운드의 퀄리티도 매우 잘 뽑혀나온 편이다. 1990년대 후반 '도전 정신' 하나만으로 맨땅에 헤딩하듯 좌충우돌의 행보로 시작된 한국 인디 록이, 이제는 제법 세련된 외양과 풍모를 과시하는 단계에 들어섰구나라는 감회가 앞선다. 코코어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하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에서 대중 음악 자체를 아우르고자 하는 코코어의 단단한 야심을 명백히 읽을 수는 있다. 수록곡 각각에 들어간 코코어의 정성과 노고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음반의 '다양함'이 좀 과하다는 것. 물론 사운드의 백화만방식 파노라마를 만끽하며 연주하는 이의 뛰어난 소화력을 헤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나친 중구난방식 나열은 과연 코코어가 지향하는 정확한 지점이 어디일까하는, 피치못할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는 코코어의 경력 전체에서도 드러나는 포인트다. 1998년 발매된 코코어의 첫 음반 는 너바나류의 그런지 록 사운드로 채워진 음반이다. 다음에 나온 EP <고엽제>는 예의 그런지 사운드에 포크와 전자음향이 기묘하게 버무려진 음악이었다. 2000년에 나온 는 시종일관 몸을 흔들게 하는 흥겨운 하드 록으로 가득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코코어의 음악 세계에 '일관성'이 크게 결핍되어있다는 인상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또한 그런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다. 물론 사운드의 폭은 다채롭기 그지없고 노래 하나하나에 담긴 만든 이의 정성을 깎아내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운드 자체의 완성도'만으로 '독창성의 부족'을 변호하기엔 힘이 부친다. '재활용'은 이제 전세계적인 유행?그렇지만 코코어가 구사하는 장르의 재활용 전략을, 이들의 얄팍한 술수라고 탓할 수만도 없다. 영미를 중심으로 하여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아도, 록으로부터 더 이상 진정한 의미로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든 현실이니까. 이제 록의 관건은 하늘 아래 없었던 혁신적인 것을 '발명'한다기보다는, 이미 제시된 음악 양식들을 얼마나 착실하게 '조합'해내느냐에 달려있는 듯 싶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이땅의 베테랑 인디 밴드로부터 다시 한번 확인하게되는 건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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