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중심가 근처에 자리잡은 H동. 여느 곳처럼 별다른 특징이 없는 여관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일반인이 업무로 바쁜 한낮에는 그렇고 그런, 재개발이 예정된 낙후지역이지만, 어둠이 깔리고 도심의 야경이 펼쳐질 때면 어느 곳보다도 자극적이고 화려한 간판과 원색의 네온사인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무늬만 숙박업, 들어가보면 윤락업소그런데 이 여관촌은 단순히 연인들이 손을 맞잡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수줍게 찾는, 그런 일반적인 의미의 숙박업소 타운이 아니다. 이곳이 막 서로의 육체적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한 연인들이 밀어를 속삭이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한 장소라는 걸, 웬만한 성인 남성들은 다 알고 있다. 이곳 여관들의 실질적인 운영 목적은 '숙박업'이 아니라, 여관마다 상주하는 묘령의 아가씨들이 투숙객과 살을 섞는 '윤락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관발이'라고 해서, 웬만한 여관에서는 방안에서 전화로 부탁하면 아가씨를 부를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H동 여관촌의 아가씨들은 그 수나 규모에 있어서 단순한 여관발이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수십 개가 밀집되어 있는 H동 여관촌 가운데 '탑 클래스'로 꼽히는 업소는 단연 S장과 J여관. 'H동의 전설'을 구성하는 '쌍두마차'라 할 수 있다. 소문에 의하면 이 두 곳은 같은 영업주가 본점(S장)-분점(J여관)의 형태로 운영하고, 심지어는 아가씨들도 공동관리한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작년 여름 S장에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약 두 달 동안 있었는데, 이 때 S장 소속 아가씨들이 대거 J여관에 '특별출근'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S장과 J여관이 인근 경쟁업소를 압도하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이곳 아가씨들의 탁월한 서비스 때문이라고. 타 업소의 아가씨 대부분이 윤락 행위에 임할 때 대충대충 시간만 때우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데 비해, 이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열과 성을 다하여 손님을 '감동'시키는 특출한 서비스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곳 아가씨들의 외모 및 신체적 조건도 타 업소보다 우월한 편이라, 이곳 여관들은 사시사철 한가할 날이 없다. 어지간한 시간에 이들 업소에 찾아가면 최소 50분은 기다려야하는 게 이제는 상식으로 통한다. '대기실'도 따로 마련특히 이 지역에서 제왕적 위치에 있는 S장의 경우, 갈곳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밀려오는 인파에 대비해 별도의 '대기실'을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즉 방문객이 S장 입구에 들어서면, 일단 카운터에 앉아있던 종업원이 손님을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대기실로 데려간다. 3~40석의 의자와 대형 TV가 마련된 그 공간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다 보면, '내가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은 심히 어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기혼자의 경우,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드는 순간도 바로 이때다. 특히 다른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들과는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세라 서로 고개를 돌리기 바쁘다. 유수의 대기업 뱃지가 양복 왼편 깃에 달려있는 어떤 이는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날짜 지난 조간신문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때 넘치는 성욕에 비해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 여자가 다 그 여자 아닌가?"싶어 성급한 행동을 옮기기도 한다. 즉 빠른 시간 안에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근처 여관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성급한 행동은 거의 대부분 뼈아픈 후회를 낳게 마련이다. 인내 끝에 맛보는 열매가 달디달다고, 진득이 기다리다 보면 웃음꽃 피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잘 보이지도 않는 TV를 향해 눈을 부라리기 한시간 여. 종업원이 다가오더니 "따라오시라"고 손을 잡아 이끈다.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오려는 것이다. 다시 여관으로 들어가 카운터에서 계산을 치룬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현찰'이 훨씬 환영을 받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최근 들어 이곳에서 신용카드는 잘 안받는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다. 어찌 되었든 여관 방안으로 들어선다. 종업원이 "그럼 잘 쉬다 가십시오"라고 인사를 한다. 홀로 방안에 남겨졌다는 적막감이 다소 기분을 막막하게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많은 '꾼'들이 H동 일대 여관이 여타 윤락업소에 비해 갖는 우월함으로, 아가씨들의 탁월한 서비스말고도 행위 전후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이구동성으로 꼽는다. 왜냐하면 이곳은 일차적으로 '여관'이고, 여관이라면 응당 목욕 시설이 방마다 달려있기 때문이다. 청량리나 미아리에 위치한 윤락촌에 '씻는 시설'이 태부족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곳 여관촌의 샤워 시설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구나 여관의 샤워 시설은 손님들에게 던지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곳은 아가씨들의 서비스가 남다르니, 온몸 구석구석 깨끗이 잘 닦아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이곳 여관촌이 다른 곳과 구분되는 결정적 요소가 또하나 있다. 다른 윤락촌에서는 고객이 정육점 조명 희번득거리는 '쇼윈도'를 통해 아가씨를 '초이스'할 수 있는데 비해, H동에 위치한 여관 전부는 손님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즉 파트너가 누가 들어올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일단 장점으로는 누가 나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내 님은 누굴까'하는 심정적 아슬아슬함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급기야 아가씨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울려퍼질 때, 가슴은 마구 쿵쾅거리고 긴장의 수준은 최고조를 이루게 된다. 성행위 못지 않은 짜릿한 쾌감이 일차적으로 온몸에 엄습하는 것이다. 그런데 들어온 아가씨가 고객의 마음에 들었다면 설레임의 보람이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할 경우, 더구나 '본전 생각'이 날 정도로 서비스까지 형편없을 경우, 아니 온 것만 못한 결과를 야기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곳을 즐겨찾는 '전문가'급 고수들의 증언과 의견을 종합해보면, 카운터의 종업원은 이미 손님이 여관 입구 안으로 들어섰을 경우, "저 사람한테는 이러이러한 아가씨를 보내야겠다"는 '판단'이 거의 본능적으로 든다는 것이다. 이곳도 엄연히 '사업장'인만큼, '초짜'냐 '단골'이냐에 따라 접대하는 태도가 차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왕이면 친숙한 아가씨와...'단골'로 분류되는 고수들 대부분은 나름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단골 아가씨'를 확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여러 아가씨를 겪은 후에 자신의 취향에 가장 걸맞겠다 싶은 아가씨를 '지정'하는 것이다. 이런 걸 업계 용어로 '지정녀'라고도 한다. 카운터의 종업원이 "찾는 아가씨 있습니까?"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지정녀가 있냐? 우리 업소를 자주 찾았냐?"는 의미로 통용되는 것이다. 아가씨와 다투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은 이상, 대개 아가씨는 손님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물론 가명이다). 손님은 마음에 들었을 경우 아가씨 이름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찾아왔을 때 한번 더 부른다. 대개 아가씨들은 몸을 섞었던 손님들을 날짜에 관계없이 잘 기억하는 편이다. 이때 서로 스쳐갔던 인연을 확인하게 되면 없던 '정'도 샘솟아나올 수도 있고, 때로는 금전을 매개로 한 육체 관계 이상의 '친밀함'이 두 남녀 사이에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단골'이라고 해서 아가씨들이 무조건 손님에게 친밀함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 아가씨들도 엄연히 인격적인 권리를 존중해야하는 여자인 만큼, 남자는 단지 일시적인 쾌락의 도구로서가 아닌 사랑하고 싶은 여성을 대하듯 그녀들을 다감하게 보듬어야 한다. 때로는 예의를 갖추고, 때로는 소중한 연인을 다루듯 정성을 기울이면 아무리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는 일을 업으로 삼은 아가씨라도 마음 한구석을 살며시 열어젖히게 마련이다. 가끔씩은 조그마한 선물을 주는 것도 좋다. 초컬릿이나 담배 한갑(한보루는 너무 과하다)이 부담없이 환영받는 선물이고, 혹자에 따르면 그녀들은 항상 입안이 깔깔한 상태에 있으므로(그 이유는 다음 호에 상세히 다루어질 예정), 짭짤한 프링글스 포테이토 칩을 주면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여하튼 단지 육체관계 뿐만이 아닌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최소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하는 행복한 경지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은 우선 '서비스의 질'이 확 달라지니까. 윤락업이라는 것도 다른 '서비스 업종'과 마찬가지로, 종사자의 기분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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