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김준배 사망사건, ‘협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 결정 “의문사위 조사에서 구타 사실은 명백했다. 쟁점은 구타여부가 아니라 구타가 김준배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 여부였다. 그런데 검찰이 구타한 사실조차 부인하는 것은 정말 유감스럽다” 검찰, 목격자 진술 채택 안 해 의문사위, 불기소처분 불복 재정신청 내기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이하 의문사위)가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을 타살로 잠정 결론낸 이후 국방부는 특별조사단을 구성 ‘타살이 아닌 자살이다’고 결론, 의문사위의 조사결과를 반박해 논란이 됐었다. 그런데 또다시 의문사위의 조사 결과가 검찰에 의해 반박돼 문제가 되고 있다. 광주지검 구타 흔적 발견 되지 않아 무혐의 결정 1997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추락한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씨(당시 27세)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의문사위는 전남경찰청 소속 이모 경장(33세)을 검찰에 고발했으나, 광주지검은 7일 ‘협의 없음’으로 불기소처분 결정을 내렸다. 광주지방검찰청(이하 광주지검)은 불기소처분 결정문에서 “피의자가 김준배를 화단 위에서 발견하는 순간에는 이미 그 주위에 경찰관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고 추정, 이들 동료 경찰이 ‘구타 장면을 보거나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진술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다. 또 “엎드려 쓰러져 있는 사람을 몽둥이로 가격한 후에도 다시 발로 짓밟았다는 것은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심했다. 광주지검은 “김씨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한 구타 흔적이 시신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의문사위 내부에서도 폭행으로 인한 사망에 이견이 있었다”면서 “김씨가 추락사했다는 당시 검찰의 조사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증거를 찾지 못해 이 경장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한 “수사 결과 김씨의 사망 원인은 의문사위 조사와 마찬가지로 장기파손으로 나타났지만 시신에서 구타를 확인할 수 있는 멍 등 외상이 발견되지 않아 불기소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의문사위가 증인으로 채택한 신모씨와 전모씨가 검찰에서도 ‘구타 사실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지만 김씨 시신에 외상이 없으므로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의문사위 “김씨 사망은 폭행에 기인한 것” 이에 대해 이 사건을 조사했던 김상구 의문사위 전 조사관은 “의문사위 조사에서 구타 사실은 명백했다. 쟁점은 구타여부가 아니라 구타가 김준배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 여부였다. 그런데 검찰이 구타한 사실조차 부인하는 것은 정말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검찰이 현장 경찰관의 주장을 결정적인 증거로 삼은 것에 대해 김 조사관은 “중요한 것은 피의자가 화단에 도착했을 때부터 끝까지 그와 함께 있었던 경찰관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들이 못 보았다고 해서 구타사실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가”라며 반박했다. 이어 “‘엎드려 쓰러져 있는 사람을 구타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기 때문에 피의자의 구타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검찰에서 할 얘기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의문사위 또한 “추락 높이와 자세 그리고 추락장소의 상태 등으로 미뤄 손상의 정도가 심하고, 김씨의 주요 손상인 폐좌상 (외부에서 둔력이 가해져 일어나는 손상), 간좌상 그리고 심장파열의 발생 시차를 고려할 때 추락 이후에도 별도 충격이 있었고, 그 충격이 이들 손상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종합하면 김씨의 사망은 이모 경장의 폭행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연대회의 정윤희 사무처장도 “검찰이 직접 목격한 사람이 말하는 진실은 부정하면서 명확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대부분 추정에 근거해 결정했다”며 “이는 의문사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검찰의 횡포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문사위 재정신청 내기로 의문사위는 9일 긴급회의를 열고 광주지검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하는 재정신청을 내기로 했다. 고소·고발인은 불기소처분 통지를 받은 뒤 이에 수긍하지 못하면 10일 이내에 서면으로 그 검사가 소속된 지검의 검사장 또는 지청장을 경유해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 재정신청이란 검사가 고소고발 사건을 독단적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그 결정에 불복한 고소를 말한다. 이에 앞서 의문사위는 지난해 8월 추락과 경찰의 폭행이 복합적으로 김준배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을 밝혀내고, 당시 전남지방경찰청 이모 경장을 독직폭행 혐의로 광주지검에 고발했다. 의문사위 결정의 근거는 △추락한 직후 경찰관이 김준배씨를 구타하는 장면을 아파트 2층에서 목격한 주민의 증언 △내부 주요장기 손상의 발생시차를 고려할 때 추락이후에 별도의 충격이 있었을 것이라는 일본 법 의학자의 감정 소견 등이었다. 한편 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씨(당시 27세)는 1989년 광주대학교 금융학과에 입학한 후 총학생회 사회부장을 역임, 남총련 투쟁국원으로 활동한 93년부터 수배를 받아오다 97년 경찰의 과잉검거 작전으로 인해 같은해 9월 15일 밤 아파트에서 추락해 운명했다. 19일 장례식을 치른 김준배씨는 현재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돼 있다. 경찰은 97년 9월 16일 “김준배씨가 학교 후배 집인 광주시 청암아파트 1308호에 은신해 있던 도중, 15일 밤 11시 50분경 동지를 연행하기 위해 전남도경찰청 보안수사대와 경찰청 기동수사대 형사 24여명이 들이닥치자 13층 높이에서 케이블선을 타고 탈출하다 추락해 다음 날 새벽에 운명했다”며 “눈부위의 멍자국과 발가락 3개 골절, 간과 폐 등의 파열로 인한 과다 출혈로 운명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16일 오전 10시경 부검 합의서를 받아내고 바로 부검을 실시한 이후 사건을 조기 종결했다. 남총련은 “추락 지점에는 13층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별다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높은 곳에서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부검에서 나타났듯이 경미한 상처 외에 외상이 없었기에 구타에 의한 운명이 아니냐”고 경찰 조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건 종결 이후 남총련을 비롯한 사회단체들은 경찰의 발표에 항의하며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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