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약사의 역할분담을 통해 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궁극적으로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겠다던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올해로 만 2년이 되었다. 그 동안 의료계의 파업 등 여러 가지 문제점과 후유증을 나타내면서 시행 초기의 분업형태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의약분업의 전면 재검토라는 강경론이 등장하고 있다. 시행 2년을 맞은 의약분업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제도적 정착을 위해서 어떠한 방안들이 추진되고 있는지 알아본다. 의약분업은 필요한가 '의약분업'이라는 제도의 시행 자체에 대해 국민들 대부분은 대체로 수긍하는 입장이다. 의약분업 시행 전 우리 나라는 항생제 내성률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었고, 항생제와 주사제의 오남용 역시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항생제 사용량을 보면 OECD 국가 평균 1,000명 중 21.3명이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 나라는 1,000명중 33.2명이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도 의약분업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시행 당사자 중 하나인 의료계는 제도 자체에 대해 다소 유보적이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잇단 토론회를 갖고 '국민선택분업'과 '완전 철폐', '현행 제도 수정 및 보완' 등 세 가지 안에 대해 '실익'을 꼼꼼히 따진 후 하반기부터 본격 투쟁에 돌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의사협회는 "정부가 준비도 안 된 의약분업을 강압적으로 시행, 국민들은 막대한 비용과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고 보고 "제도의 궁극 목표인 `건강향상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패한 정책"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잘못된 현행 이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수술대에 올려놓아야 하며 어떻게 '집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의협은 의사의 직접투약을 골자로 한 의료법개정안을 추진해 사실상 '선택분업'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한약사협회는 의약분업에 대해 적극적인 찬성을 보이고는 있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해 본질이 왜곡됐다는 입장이다. 약사회는 올해 초 결의문을 통해 "독선과 이기심에 가득찬 집단의 법을 유린하는 행동에도 속수무책이었던 정부는 오히려 법에 순응하고 정부시책을 따라온 단체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며 "분업제도가 변질되거나 원칙이 뒤집히는 사태가 일어날 경우, 5만 약사 모두가 약사직업을 폐기하고 전면적인 극단 투쟁에 나갈 것임"을 선언한 바 있다. 의약분업에 대한 의료계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도 자체는 지속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 정계와 학계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미 시행된 제도를 철폐할 경우 드는 비용 역시 막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0년 총파업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신뢰에 큰 타격을 받은 바 있어 의료계의 입지가 상당히 축소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제도시행에 대한 엇갈린 평가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2년이 되긴 했지만 첫해의 의료계 파업과 지난해 3월의 건강보험재정적자 문제 등으로 이 기간까지는 사실상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작년 5월 『건강보험 재정안정 및 의약분업 정착 종합대책』을 수립을 계기로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분업이 시행되었다고 본다면 평가는 이 때까지의 통계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초의 분업 시행안이 지난 2년 동안 너무나 많은 변형을 가져왔기 때문에 분업의 성과를 말하기는 무척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의료계는 의약분업이 국민 의료비의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가져왔을 뿐 항생제나 주사제의 의약품 사용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호르몬제와 항생제 사용이 서서히 감소하는 분업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의약분업은 수십년 계속된 국민의 의료관행을 바꾸는 것인 만큼 단기간에 뚜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어 정당한 평가를 내리기는 시기상조인 면도 없지 않다. 의협은 지난달 27일 공청회를 열어 "분업 전 약가마진 등을 고려하면 의원급 의료기관은 최대 5,727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입고 있으며, 의료기관 전체를 놓고 볼 때 3조 2,867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해를 부담"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책임을 의료계에 전가하기 위하여 재정파탄의 주된 원인이 의료기관의 불법적인 보험급여청구인 것처럼 오도하는 한편, 의사들에게 족쇄를 채우고 국민들의 관심을 의료계로 집중시켜 재정파탄 책임을 면하고자 '의사죽이기'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 이후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분업 시행 전후의 수가인상과 진료비공단부담(보험자부담비율)의 증가 등으로 재정수지가 급속히 악화됐으나, 금년 상반기의 보험료수입 증가, 제도개선, 국고 조기배정 등으로 1,600억원 당기흑자가 발생하는 등 점차 안정화되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또 의약분업 이후 의원들의 진료비 수입이 평균 56%, 금액으로는 900만원 정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의약분업 이후 의원의 환자 증가율이 5.3%에 불과한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이 같은 수입 증가는 결국 의약분업 이후 32% 인상된 '진료 수가(수가)'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더욱이 국민의 알권리와 의약 서비스의 향상 등 의료문화의 개선이 점차 이루어지고 있다며 의약품 오남용의 사례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고 연간 1억7천만건으로 추산되던 임의조제 역시 금지되어 있는 만큼 의약분업의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의 평가는 현재로서는 '의약분업 시행' 자체에 의미를 두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의약분업을 통한 의약품 오남용 방지 효과는 단기간에 가시화 되지 않으면서 국민들이 감수해야할 현실적인 불편은 당장 나타나기 때문에 이 제도 정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약국에서 항생제 등 전문의약품을 구매해 사용하는 대신 전문지식을 가진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하게 된 것이 큰 변화"라면서 "이 과정에서 처방전이 공개됨으로써 환자의 알권리도 많이 확보됐다"고 평가했다. 한편, 모든 의료 문제를 의약분업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의약분업의 효과를 당장 계량화하기는 힘들지만 국민건강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분업 전 연간 1억7천여만건으로 추정되던 약국의 임의조제가 보험제도권으로 들어와 상당히 줄어들게 됐고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조제 과정을 통해 의약품 오남용을 예방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의료계의 무리수 의사협회는 최근 의사의 직접투약을 골자로 한 의료법개정안을 추진하는 등 의약분업에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번 개정안의 추진은 '의약분업'의 본질과 정면으로 대치되고 있어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의협은 이번 개정안의 근거로 투약을 의료행위에 규정하고 있는 1998년의 대법원 판결을 들고 있으며 이미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의료법개정 논의를 이미 대통령산하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 의제로 상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약사회는 "의약분업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보건복지부 역시 의협의 이 같은 태도는 의약분업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으로 악의적인 발상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의협은 왜 이토록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복지부 관계자는 '검사, 간호, 조제, 투약 등 모든 행위를 직접 지시·감독해야 한다'는 의사들의 선민의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의 수평적 직능 분담을 의미하며 상호 견제와 감독을 통해 불필요한 투약과 무분별한 약의 오남용을 막자는 것인데 약사를 지도감독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의사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개정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의원의 경우 의약분업 이후 수익이 50% 이상 늘어난 것에 상당히 만족감을 보이고 있는데도 협회 쪽에서만 강경 대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지난 2000년 파업 이후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운데 또다시 파장이 일어날 경우 의료계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일부에서는 이 같은 강경론에 대해 최근 의사와 제약회사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언론에 의해 폭로되고 사회적으로 의료계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지자 입지의 불안을 느낀 협회가 강수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뚜렷한 대안이 없다 의료계를 중심으로 사회 일각에서는 현행 의약분업 제도의 폐지 또는 선택분업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의약분업 시행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원점으로 돌릴 경우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현행 의약분업 제도는 분명 많은 문제점은 안고 있지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주체인 의사와 약사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있어 분업의 미래는 매우 어둡게 느껴진다. 그러나 의·약계의 상반된 입장과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고려할 때 의약분업을 조기에 정착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 나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분업 시행 후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보완장치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의약분업은 현행 틀에서 개선해나가야 한다"며 "일시적인 항생제 감소로 분업의 효과를 가늠할 수 없고 지속적인 감소현상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분업 시행 후 복병으로 등장한 고가약 처방에 대처하는 문제다. 분업 시행 전에는 의약품 유통과정에서 처방전의 공개로 저질 의약품이 퇴출되고 양질의 의약품이 유통될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고가약 처방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된 것이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EDI 청구 의료기관의 외래 진료분 기준으로 고가약비율은 의약분업 실시전 36.24%(2000년5월)에서 분업후인 지난해 1월 53.48%로 크게 증가했고 올해 3월에도 50.85%로 나타났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가약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동일 성분과 함량, 단위를 가진 의약품을 대상으로 대체조제를 활성화하고 동일 효능군별로 정해진 기준가격까지만 건보재정에서 약가를 부담하고 기준가격 초과분은 환자 본인이 부담토록 하는 참조 가격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환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 병의원 주변약국에 집중되는 처방전이 동네약국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단골의원'과 `단골약국' 제도를 활성화해 환자들이 처방전을 들고 거리는 헤매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 병원과 약국을 상대적으로 많이 방문하는 노약자들에 대한 중복투약 방지와 약력관리 등의 효과도 거둘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과 심지어는 약사들도 이 같은 단골약국제도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어 정부의 홍보가 아쉬운 실정이다. 이와 함께 의약분업의 근본적인 취지를 훼손하는 병원과 약국간 담합행위에 대해 철저한 단속을 벌이고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불법행위 근절노력이 병행돼야 분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사회 일각에서는 현행 인구 만명당 13명에 불과한 의사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의사에 대해 사회적 특혜를 주다보니 자유로운 의료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이탈리아 59명, 스페인 44명, 독일 35명, 프랑스 30명, 미국 27명 등 국내와는 비교가 안 된다. 특히 전문 인력의 수급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대학 입학 정원을 정부가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만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호 협조가 무엇보다 절실 의약분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여러 보완장치는 의료계와 약계의 협조가 있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의약분업의 성공과 실패를 한손에 쥐고 있는 의사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의사협회는 최근 분업 시행 2주년을 즈음해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를 통해 분업폐지, 선택분업 실시, 현행 제도 보완 등 3가지 정책방향을 두고 의료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있지만 강경한 입장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있다. 의협은 약사의 임의조제를 적발하기 위해 전직경찰관을 고용했는가 하면 약사회는 일간지 광고내용을 문제로 의협 집행부를 형사고발할 방침을 발표하는 등 분업의 양 주체간 갈등 양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약계간 갈등을 해소하고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부당국의 노력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당국은 지난 2년간 우왕좌왕했던 행태에서 벗어나 의약분업의 원칙에 입각해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야 의·약계는 물론 일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당국은 의약분업을 시행하면서 의료비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하지 못했고 국민이 느낄 수 있는 불편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익단체일 뿐인 의료계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닌다는 인상을 주게 될 경우 국민들의 참여의지 역시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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